한국 선사상의 가르침

오이겐 헤리겔이 지은 책활쏘기의 선(정창호 옮김걷는책, 2017)’ 의 내용 중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활시위가 엄지손가락을 순간적으로 베어버린 듯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른손을 의도적으로 열어서는 안 됩니다!” 

책의 내용 중 이런 내용이 많다. 쏘겠다는 의도 없이 쏘아야 하는 상황의도 없는 행함. 과연 이해가 되는 내용인지 처음 읽을 때는 상당히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을 했다

다년간 한국 () 사상 수련을 통해 내 안의 우주, 내 안의 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문구를 생각해보니 그 뜻이 살아 돌아오는 것 같다. 결국, 가장 최고의 행위는 내 안의 그것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의도가 없다는 것은 결국 개체성의 의도를 전혀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체성의 죽음은 곧 전체성의 부활이다

몸의 근육을 통해 드러나는 반응들, 다우징을 통해 알 수 있는 초감각적 지각이 이에 해당한다

궁도의 핵심 또한 꼭 명중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활과 목표물과 내가 하나 됨을 통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일 것이다

상대방을 보지 않고 공만 보고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라켓과 공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옵니다.”_현정화 선수(같은 책, 맺음말옮긴 이

상대방을 꺾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합일이 곧 최고 수준의 결과를 드러낸다. 상대방을 꺾고 금메달을 따겠다는 앞선 생각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집중을 하는 것이다. 공만 보고 뛰다 보면 어느새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 이미 공이 어디로 올지 안다는 듯 몸이 나를 이끄는 몰입의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삶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와 우주와 나의 목표가 셋이 아닌 하나라면? 어떻게 도달할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도달한 내가 어떻게 그것을 드러낼지가 질문이 된다.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큰나로서 바라보는 자세

한국 선(仙)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잊고 있던 나의 존재성으로의 회기?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 흔적을 어떻게든 알게되면 그 근거에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것 하나됨을 통해 세상에 진리를 드러내는 과정일까?
이 사상은 전 세계 종교/수행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알게되는 기회를 맞땋뜨리는 상황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짧은 지식이지만 종교와 수행의 역사를 통해 본 바, 많은 사람들이 몇천년의 역사에서 노력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려가며 얻으려고 했던 그것은 분명 우리가 확률적으로 어렵다고 얘기를 하는 것 이상의 문제였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그리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닌 진짜 나의 모습으로 매 순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얻은 관찰이 있다면 아래와 같다.
육체를 가진 생명체로서 감정, 정서, 감각에 대한 이성적 통찰이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유전적 정보, 이 땅에 태어나게 이유가 분명이 있기에 지금 이 삶에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그 무엇인 반드시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잘하고 못하는 것을 분별해 내야 하는데 효율적인 분별을 위해 내가 정말 잘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참을 가려내기 위해 참이 아닌것을 지우다보면 참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처럼. 물론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잘 못하는 것은 나의 성향이나 성격, 관심도, 등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 결정이 되는 영역일수 있다. 문제는 잘 못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나 교육된 습관적 사고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되돌아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항상 안고 산다는 것이다.

잘 못하는 부분을 가려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잘 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대개 불편하거나 두려운 상황을 맞닿뜨리면 피하거나 잘 못하는 부분이라고 쉽게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좀 더 깊게 살펴보면 두려움이 드는 부분이 어쩌면 내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우주의 설계가 완벽한 것이고 내가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다 우주의 설계에 의해 정말 섬세하게 고민되어 내 앞에 주어진 것이라면 그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물이나 사람이나 두려움을 느낄때 집중도가 올라간다. 생명을 유지하고자, 자신의 comfort zone을 지키고자 자연스레 발동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 집중의 힘을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회피나 도망치는곳에 사용하지 말고 오히려 그 상황에 용기있게 마주대하는 힘으로 작용케 한다면? 결국 그런 discomfort 한 상황들은 큰 그림에서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작은 그림으로서의 ‘나’가 아닐까?

2017’s farewell message

2017년의 마무리를 몇일 안남겨둔 어느 날 어찌하여 브라마쿠마리스 단체의 저녁식사 및 간담회 자리에 대신 참석하게 되었다.
모든일이 그렇지만 내가 계획하던 일이 아닌 경우 먼저 스트레스를 받게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익히 내가 아는 부분도 있고, 굳이 가야하나 라는 생각도 있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내가 내 지식으로 모르는 하나때문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 하나는 바로 내가 대신 가게된 이 상황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설계가 허술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그 우주의 원리, 우주의 작동방식에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 또한 우주의 완벽한 설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진리이자 사실이다.
내가 나의 머리로 판단하는 습관을 철저하게 버리는 것만이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그 모든것이다.

시간 맟추어 도착을 하니 준비하시는 분들 몇몇, 그리고 오늘의 사회자가 계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착석하여 오늘 간담회의 주인공인 호주 브라마쿠마리스 총괄책임자를 만나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오늘 참석한 사람들 하나하나 돌아가며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진 후 짧지만 간략하고 핵심적인 메세지를 듣고 토론을 하였다. 솔직히 말해 내 머릿속에 팍 꽃히는 명확한 메세지는 없었다. 요즘 20~30대 작가들이 쓰는 자기계발서에 다 나올법한 이야기이며 그래서 조금은 식상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오늘 여기에 온 이유를 되새기며 우주의 설계에 조금이나마 더 녹아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 장소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음식도 좋았고, 오신 분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행사를 주관한 브라마쿠마리스 분들의 정성은 더할나위 없었다.

마지막은 참석한 분들께 브라마쿠마리스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씩 주셨는데 년도와 상관없이 계속 쓸수 있는 만년달력과 포츈큐키 속에 숨어 전달되는 메세지 같이 작은 카드 하나가 있었다.
각 분들께 전달되는 메세지는 다 달랐다. 그래서인지 다가오는 2018년을 좀 더 내실있게 살기위한 하나의 포츈텔링같이 느껴졌다. 내가 받은 메세지는 아래와 같다.

**다정한 눈빛과, 믿음직스러운 말, 향기있는 행동으로 당신은 행복을 창조합니다. **

이 메세기를 읽으며 나를 반성하고 2018년에는 좀 더 정신을 차려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정한 눈빛은 곧 우주의 주인다운 포용력을 가지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주인다운 생각과 행동으로 다가오는 모든 상황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정말 필요하다.
믿음직스러운 말은 곧 언제나 솔직하고 정직한 말만 하라는 뜻인것 같다. 믿음직하다는 것은 사실이건 아니면 아직 사실로서 확정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논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사람일 경우 대개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하기 마련이다. 그사람의 정보가 틀렸다고 해서 문제가 안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에게서는 정보의 정확성을 포용하는 삶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향기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까? 위의 두 요소를 결합했을때 비로소 향기있는 행동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우주의 주인다운 자세로 솔직 정당하게 생각하고 인정하고 표현하는 사람에게는 신뢰의 향기, 용기의 향기, 사람다운 향기가 난다고 생각을 한다.

결론은 그래서 오늘 내가 오게된 이 자리에 잘 왔다는 것이다. 아직도 섣부른 판단속에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우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안타깝지만 결국 오늘이 또 하나의 발전의 시작이 되고 내일은 그래서 좀 더 우주의 주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될것이라는 확신으로 오늘 우주의 설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Under construction

For those who visit my blog, I have to give my sincere apology for it is not yet ready for proper communication. I will update the contents in a near future and publish and re-open it within this year. I, therefore, ask your warm generosity. The image below is the one of the story-line that I will present in the symposium in October. I will try to explain the three main things, which are AWARENESS – FORCES – HERITAGES.

_Map.jpg

고대 그리스 언어로 부터의 생각_Architecture

현재 작업 중인 글에서 나누고 싶은 부분을 발췌하여 올려드립니다.

===================================

모든 언어가 그렇듯 Architecture라는 영어 단어 또한 그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그 의미가 내포하는 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 단어의 구성을 해부해 보면 우선앞부분에 해당하는 ‘Archi’단어가 ‘Arche’, 즉 ‘근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Arche’는 근원 내지는 원리를 뜻하는 단어로서 작게는 각 개개인의 근원적, 다시 말해 존재적 바탕을 의미할 수 있으며 크게는 세상 만물이 스스로 그러하게 움직이고 있는 자연의 근원적 법칙을 뜻하기도 한다. 뒷 부분에 해당하는 ‘Tecture’는 ‘Techne’라는 단어에서 파생이 되었다. ‘Techne’는 통상적으로 ‘기술’이라고 번역이 되지만 그 근원적 의미를 찾으면 금방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라는 말보단 ‘Techne’라는 단어가 ‘기술’ 이라는 의미만을 뜻한다고보기엔 너무나 한정된 일부만 드러낸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 나타난 존재에 대한 깊은 탐구와 성찰을 들여다 보면 우선 그 당시에 바라보았던 Technology(Techne 에서 파생 된 현 시대에 같은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 라는 개념은 무척이나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람들에겐 Technology 라는 것은 ‘자세(mode)’ 내지는 ‘상태’를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문제는 어떠한 상태이며 자세인가인데 여러 문헌들을 종합해서 간략히 나타낸다면 ‘자연을 이해하는 상태’ 내지는 ‘자연을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관찰 태도(Disclosive looking)’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Technology는 Techne 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가 된 단어 이므로 이 Techne라는 단어를 좀 더 분석적으로 들여다 보게 되면 우선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어떠한 것을 실행하고 만들고 하는 실용적 기술의 범주가 아닌 그러한 실체적인 것들을 가장 진실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정신 내지는 이해상태 임을 알 수 있다. 이 개념 또한 간략히 풀어서 설명을 한다면 ‘존재적 실체를 보는 상태’, 혹은 ‘일반적인, 어디에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실존적 존재성을 알아보는 이해력’ 등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 ‘Tecton’ 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장인’을 뜻하는데 위의 어원적 개념들을 기반으로 이 ‘장인’ 이라는 단어를 다시 본다면 ‘장인’ 은 그냥 열심히 수준급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낼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 ‘존재에 대한 성찰과 철저한 이해를 통해 자연의 원리와 근원적 진리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Architect는 과연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Archi(Arche) + Tect (Tecton)의 원래 뜻을 합쳐 정리해 본다면 ‘존재의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원리 안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체’ 라고 정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Architecture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본래의 의미에서의 Architecture는 따라서 본래의 존재성, 즉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의도한 만큼 드러내는 과정 혹은 드러내어진 상태를 말하며 그에 상응하는 실제적 결과값은 여러 가지로 치환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현 시대적 이해관계에서 좀 더 세밀하게 본다면 통상 우리가 말하는 ‘Architecture’는 건축이라는 이름 하에 ‘공간의 형태 및 구성’과 밀접한 관련을 짓고 있기에 적용이 되는 범위는 시대적 맥락에서 한정되게 바라 볼 수는 있다고 보며 추후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될 핵심영역 또한 특정 공간 및 건축물에 대한 근원적 입장에서의 관찰 및 설계와 결부 되어있다.

To be continued….

====================

참을 찾아가려는 수련자 여러분 모두가 Architect 입니다. 우연인지 제가 공교롭게도 건축을 공부하게 됬고 측정과 명상을 통해 참 건축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됬고 또한 어원적 풀이 또한 그 의미가 같은 점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가 자신있게 제 타이틀을 Architect 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한글 번역의 ‘건축가’는 한계를 분명 가지기 때문에 다른 번역을 생각해야 될 것 같지만요. Architecture가 Building과 구분되어야 하고 Architect 또한 Builder 혹은 Building designer(Drafter)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멕시코 마야 유적 El Castillo에서 포착된 정체불명의 빛기둥과 실상에 대한 고찰

  • 어떤 사진으로 부터의 이야기

 

초감각적 지각을 통한 유적지 관찰

초감각적 지각을 통해 국내외 여러 고대 유적지를 분석해 본 참나찾기수련원 도반이라면 본 사진은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이미 여러 절, 신전 등에서 관찰된 ‘하방향원주형천기생기’는 이제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닌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일반적으로는 보는것이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개체이다. 특징적으로 하늘에서 원기둥 형식으로 땅으로 떨어지듯 내려오는 이 지기는 신성한 장소, 건축물 등에서 관찰이 되고 있으며 더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의 현인들은 이 지기의 존재를 알고 그 지기에 입각하여 건축물의 위치와 배치형태를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양식의 모양과 크기 등을 아주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건축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그 건축물들이 그 위치에 그런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원인, 근원적 이유를 알아야 할것인데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이 지기의 존재이다. 물론 건축행위에 영향을 준 지기들은 이 하방향원주형천기생기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 유적지를 추감각적 지각을 통해 분석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선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빛기둥 현상에 걸맞는 지기형태가 영향을 주고 있을까? 한번 전체적으로 유적지 정보를 기준으로 관찰해 보기로 한다.

 

초감각적 지각을 통해 밝혀낸 유적지의 실상

우선 분석을 위해 El Castillo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면 사용을 할 수 있도록 제공된 사진이나 도면들 중 지기분포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깨끗한 바탕이 될 수 있는 도면들을 선택하였다. 그 중 하나는 현재의 유적지 모습을 레이저 스캔으로 정확하게 그려낸 도면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과 구조등의 관계를 간추려 핵심적으로 드러나게끔 다시 그린 도면이다. 두 도면의 차이는 있는 그대로의 도면은 비정형적인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면 두번째 도면은 그것들을 다시 정형화된 모습으로 다시 그려놓아 원래의 공간이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다소 대칭과 정형화된 틀에 일부러 맞춘 것이다. 지기분포와의 관계를 관찰하기 위해 첫번째 도면을 활용하기로 한다. 이는 좀 더 객관적인 관찰을 위해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기초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인도 답사때도 얻은 경험이지만 멀리서 전체적으로 볼때는 아주 대칭적이고 정형화된 공간구조로 보였지만 가까이서 관찰했을때 그 속에서 꿈틀대던 비정형적인 조화가 아주 섬세하고 지기에 정확하게 맟춘 선택이었으며 그래서 더욱더 돋보였던 건축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관찰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두고 시작을 하는 것이 객관성을 담보하는 기본이 되는 자세라고 생각을 한다. 대칭일것이라는 시대의 학문적인 프레임을 통해 걸러내진 도면은 주관성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진 깃발처럼 바람이 부는데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가진다.